감독 : 봉준호
출연 : 송강호, 김상경
개봉 : 2003.04.25
제목 : 살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 줄거리
1986년 경기도 시골 마을 (화성), 젊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본인의 옷가지로 포박을 당한 듯한 모습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얼마 후, 비슷한 수법으로 또 다른 여성이 살해되는, 이른바 연쇄 살인 사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음모조차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범인의 치밀함으로, 수사는 오리무중이 되어간다.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는 일명 무당눈깔이라 불리는 박두만(송강호)과 전설의 오른발잡이 군홧발의 조용구(김뢰하) 형사다. 본능과 육감으로 범인들을 잡아내는 두만과 닥치는 대로 용의자를 잡아 족치는 스타일의 용구는, 늘 해오던 수사 방식으로 용의자들에게 자백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들을 약 올리듯 또 다른 피해자가 계속해서 발생한다.
어느 날, 서울 시경에서 서태윤(김상경) 형사가 사건 관할 경찰서로 파견을 받아 내려오게 된다. 태윤이 팀에 합류하면서, 수사는 기존의 미신과 폭력의 방식에서 벗어나, 서류와 팩트에 근거하여 그럴듯한 범행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들이 살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가설도 잠시, 전혀 연관성이 없는 또 다른 피해자가 속출하고, 두만과 태윤의 갈등도 점점 커져만 간다. 그러나, 늘어나는 피해자만큼 용의자의 수도 늘어나면서, 서로의 수사 방식을 증오하던 두 형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상반되는 부분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여경 권귀옥(고서희)의 집요한 분석으로 유력한 용의자 박현규(박해일)를 수사하게 된다. 여러 정황과 유일한 생존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볼 때,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그를 구속할 수 있는 결코 명백한 물증이 없어, 안타깝게도 사건은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범인 그리고 암시와 복선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에서 10명의 부녀자가 강간 및 살해당한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토박이 형사 박두만과 조용구는 본능적이고 전근대적인 강압수사를 한다. 봉준호 감독은 두만과 용구를 통해서 단순히 그 당시 수사 방식의 미개함만을 표현했다기 보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은유적으로 녹여냈다고 본다. 부당한 권력구조와 폭력으로 정치적인 노선을 달리하는 선량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켰던 탄압의 시대를 두 형사와 조금은 모자란 용의자 백광호(박노식), 변태 용의자 조병순(류태호), 지극히 정상적이고 선량해 보이는 용의자 박현규(박해일)를 통해 표현해냈다. 특히나, 조용구가 왼발이 아닌 오른발잡이 군홧발로 용의자들을 밟아버리는 모습은 그가 어느 발 잡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통해 보수 독재의 진형을 강렬히 시사했다고 보인다.
한편, 서울에서 파견 나온 태윤을 통해, 비로소 전문적인 수사방식, 즉 프로파일링 기술이 도입되고 경찰과 언론 모두 찾아내지 못했던 숨겨진 피해자를 찾아 내게 된다. 하지만, 프로파일링 기법에 의거하여 진행한 수사도, 결국 당시의 과학적 기술의 부족으로 진범을 잡아 내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태윤마저 두만과 용구의 모습처럼 감정적,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진범을 잡지 못한 답답함과 억울함에 변해버린 한 형사의 모습은 시대적 상황에 순응하고, 그들과 결탁하여 변질되어 버린 어느 집단의 결말은 아름답지 못해야 한다는 감독의 숨은 저의가 아닐까 싶다.
총평
두만과 태윤이 그렇게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범인은, 영화 속에서는 끝내 잡히지 않고 막을 내렸지만, 세월이 30년도 훌쩍 지난 2019년 9월, 무기징역으로 복역하고 있는 이춘재로 밝혀졌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아닌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불린다. 사건이 중단된 시점에서 당시 프로파일러였던 표창원의 예측이 화재가 됐었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 범인은 분명히 계속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정신 상태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추가 범행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범인이 사망했거나, 아니면 다른 범행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장기간 복역 중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었다. 결과적으로 이춘재는 후자의 경우였다. 영화 속 엔딩 장면에서 여학생이 말했듯이, 그는 그냥 뻔한 얼굴, 평범한 외모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를 프로파일링 한 범죄심리학자의 발언이었다. 이춘재의 진술을 들어보면, 본인의 범죄에 대해서, 정말 일말의 감정 동요 없이 진술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도 별다른 감정을 못 느꼈다고 하니,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범인은 어느 시점부터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아니, 인간과 다른 종의 어떤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모든 범죄들은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 하지만, 끝까지 그 범인을 찾아내려 했던, 영화 속 두만과 태윤이 대신 표현해 주었던, 당시 형사들의 마음의 부채의식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클 것이다. 시효가 끝난 사건임에도, 몇몇 증거물을 버리지 않고 잘 보존하고 인수해서, 결국은 진범을 잡아내게 해 준 그 누군가의 치밀함과 집요함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또한, 굳이 자백해도 되지 않는 사람을, 심리적인 설득을 통해서 자백하게 이른 개가를 보여준 프로파일러들에게도 무한한 박수를 보내 마땅하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프로파일러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입증한 샘플 케이스가 되었다고 역설했다. 이춘재가 잡혔다고 해서 모든 것들이 다 해소가 된 건 아니다. 하지만, 진범을 잡지 못해 돌덩어리 같이 무겁고 억울하던 그 날카로운 살인의 추억이, 모든 사건은 절대 미제 사건으로 덮이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의 추억으로 새로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미제로 남겨진 다른 사건들도 하루빨리 진범이 밝혀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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